|
39
저 옛날에 오직 '하나'인 것을 얻은 것 중에서,
예컨데 우선 하늘은 이 '하나'를 얻어서 맑고 가벼우며,
땅은 '하나'를 얻어서 무겁고 안정되며,
신(神)들은 '하나'를
얻어서 영묘(靈妙)하고,
계곡(谿谷)은 '하나'를
얻어서 물이 가득 차 있으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생장하고,
제후와 왕들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하나'이다.
하늘에 그것을 맑게 해주는 것이 없다면
하늘은 장차 아마 파열(破裂)할 것이다.
땅에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 없다면
땅은 장차 아마 폭발할 것이다.
신들에게 영묘함을 부여하는 것이 없다면
신들의 능력은 장차 아마 다하고 말 것이다.
계곡에 물을 채워 주는 것이 없다면
계곡의 물은 장차 아마 고갈될 것이다.
만물에 그것을 생장하게 하는 것이 없다면
만물은 아마 절멸(絶滅)할 것이다.
제후나 왕들에게 그들을 우두머리로 삼는 것이 없다면
그들은 장차 아마 몰락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그 바탕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후나 왕들이 자신을
고(孤)니 과(寡)니
불곡(不穀)이니 하는 말로 일컫는 것이다.
이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까닭에 최고의 영예는 칭찬받지 않는 것이며,
구슬처럼 평범한 것들 가운데서 빛을 발하거나 단단하기만 한 돌처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40
근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도(道)'의 움직이는 법칙이요,
유약하다는 것은 '도'의 작용하는 모습이다.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有)는 무(無)에서
나온다.
41
상등(上等)의 인사(人士)는 '도(道)'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행하고,
중등의 인사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 하며,
하등의 인사는 '도'를 들으면 그것을 크게 비웃는다.
하등의 인사가 비웃지 않는 '도'는 '도'라고
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런 까닭에 <건언(建言)>에 이런 말이 있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전진하는 도는 후퇴하는 것 같으며,
평탄한 도는 기복이 심한 것 같고,
최상의 덕은 깊은 골짜기처럼 빈 것 같으며,
너무 흰 것은 때가 끼어 검은 것같이 보이고,
큰 덕은 부족한 것 같으며,
건실한 덕은 구차한 것같이 보고,
소박하고 순수한 것은 색깔이 바랜 것같이 보인다.
무한대의 방형(方形)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이루어지는 것이 늦으며,
큰 음(音)은 그 소리를 귀로 들을 수 없고,
대상(大象), 즉 도(道)에는
형체가 없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도'만이 오직 천하 만물에게 힘을 잘 빌려 주고,
만물이 그 목적을 이루도록 해 준다.
42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음(陰)과 양(陽) 둘을
낳고,
음•양 두 가지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에
충기(沖氣)를 합한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기를 등에 지고 양기를 안으며 충기로 조화를 이룬다.
고(孤)니 과(寡)니
불곡(不穀)이니 하는 것들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나 공(公)들은 이 말들을 자신의 칭호로 쓴다.
그런 까닭에 "사물은
대체로 손실당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 되고
혹은 이익되는 것이 도리어 손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이 가르치는 바를 나도 또한 가르치련다.
"강포(剛暴)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으련다.
43
천하에 가장 부드러운 물이 천하에 가장 단단한 바위를 향해 돌진한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 틈도 없는 곳에도 침투한다.
거기에서 나는 무위(無爲)가 유익하다는 것을 안다.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에 비교될 만한 것은 천하에 드물다.
44
명예와 몸 중 어느 쪽이 사람에게 절실할까?
몸과 재물 중 어느 쪽에 더 가치가 있을까?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을 병들게 할까?
그런 까닭에 재물을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낭비하게 되고,
재물을 지나치게 많이 쌓아 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굴욕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면 장구할 것이다.
45
가장 완전한 것은 무엇인가 모자란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효용이 다함이 없다.
가장 크게 충만된 것은 텅 빈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작용에 끝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가장 뛰어난 기교(技巧)는 서투르게 보이며,
뛰어난 웅변은 눌변(訥辯)처럼 들린다.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